더 플래머 세계관 이야기 #1

대전쟁 — 일주일 만에 세계가 무너진 날

이번 보드게임 "더 플래머: 잃어버린 섬" 은 플래머 행성, 대전쟁 10년 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족보행 동물들이 살아온 플래머 행성의 1000년 역사에서 가장 처참했던 전쟁 — "대전쟁". '잃어버린 섬'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오늘은 이 세계관 이야기의 첫 시작으로, 대전쟁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그리고 그 흔적이 보드게임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소개해 보려 합니다.

그럼,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니스트라는 천재

10년 전, 한니스트라는 자가 있었다.

마족(말)의 천재 과학자 한니스트는 어릴 때부터 기계공학에 능통했고, 이라는 국가에 기계 산업의 부흥을 일으켰다.

캄은 말의 마족, 코끼리의 상족, 그리고 쥐의 서족이 함께 연합해 세운 오래된 공화국이다.

700년 전 이 연합의 힘은 막강했고, 당시 캄은 세계를 주름잡던 거대 제국이었다.

700년 전 세계를 주름잡던 거대 제국 캄의 옛 영광

하지만 시간이 흘러 왕조는 무너졌고, 세계전쟁에서 서족이 분열하면서, 한니스트가 기계 부흥을 일으키기 전의 캄은 세계 지배력 10위에도 들지 못하는 약소국이 되어 있었다. 당시 국가로 기능하던 13국 가운데 12위.

왕조가 무너지고 약소국으로 몰락한 캄 — 13국 가운데 12위

그러나 한니스트의 기계 부흥으로 캄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듯했다. 폭발적인 군사력과 자본력. 캄은 웅족(곰)의 "도이", 어족(악어·상어·돌고래 같은 수중 동물)의 "야니" 에 이은 "세계 3대 강국" 이 된다.

한니스트가 일으킨 기계 산업의 부흥으로 되살아나는 캄

갈라선 길

당시 세계 질서는 도이와 야니가 주축이 된 세계연합이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강력하게 떠오른 캄은 거대 양국이 이끄는 세계연합에 초청받는다. 캄은 세계연합에 편입될 것인가, 말 것인가 —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고, 이를 국민투표로 정하기로 하자 캄 내부의 정치 싸움은 극도로 치열해지기 시작한다. 한니스트는 연합의 반대편, 즉 세계연합 편입을 반대하는 주축 세력이 되어 선거 운동에 나선다.

다시 떠오르는 강국 캄은, 세계연합에 편입되지 않은 약소국들에게 리더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다. 한니스트는 캄이 그 역할을 계속 해주기를 바랐고, 그래서 세계연합에 편입되지 않기를 바랐다.

캄의 인구는 서족 90%, 상족 8%, 마족 2%. 서족이 압도적인 인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직접투표제였던 캄 공화국의 국민투표에서는 서족의 표가 승부를 가르는 상황이었다. 한니스트는 서족이 역사적으로 겪어온 차별의 아픔을 강조하며, 세계연합은 결국 상족과 마족의 편이라고 주장했다.

캄의 운명을 가른 세계연합 편입 국민투표

하지만 국민투표 결과 —

서족의 압도적인 지지로, 캄은 세계연합에 편입되었다.

한니스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서족이 세계연합을 지지한다는 것이 자신의 논리로는 납득되지 않았다. 기득권 세력이 서족의 표를 로비했다는 의심에 분노한 한니스트는, 홀로 캄을 떠났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 작은 무인도에 정착해, 작은 국가를 세운다.

국민투표 결과에 분노해 홀로 캄을 떠나는 한니스트

한니스트가 주축이 된 이 국가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 그대로 '한니스트'. 로봇들이 지배하는 국가다. 농업은 유일한 동물인 자신이 먹을 양만 생산하면 됐기에, 한니스트라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전력이었다. 한니스트는 무인도 주변 바다의 독점적인 조력(해양 에너지) 자원을 활용해 전력 생산을 해결했다.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에 세워진 로봇들의 국가 '한니스트'

또, 무인도 주변 바다 아래에서 여러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된 광물 지대를 발견한다. 한니스트는 이를 활용해 다량의 무기와 무인 장갑차, 그리고 무인기를 세계에 공급했다.

효율적인 노동과 빠른 생산력, 그리고 "기계화 중립국"이라는 인식. 한니스트는 순식간에 세계 모든 나라에 성능 좋은 무기를 저렴한 가격에 팔 수 있었다.

한니스트라는 국가의 등장은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니스트가 전쟁을 로비한다는 의혹이 들 정도로, 당시 견족(개) "라루나피의 후예" 와 세계연합 사이의 전쟁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한니스트는 라루나피의 후예와 세계연합 양쪽 모두에 무기를 공급하며 자신의 입지를 불려 나갔다.

세계 곳곳의 전쟁터로 향하는 한니스트의 무기 공급

일주일

그러던 중, 한니스트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한니스트의 세계 무기 보급률이 60%를 넘어서는 순간 — 세계연합과 라루나피의 후예가 가지고 있던 무인기와 무인 장갑차가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통제에서 벗어나 주인에게 돌아서는 무인기와 무인 장갑차

자신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자신들을 지켜주던 장갑차가 갑자기 돌변해 주인을 공격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은 동시다발적이었다. 전 세계의 지휘 체계는 마비되었고, 순식간에 모든 국가가 혼란 사태를 겪게 된다. 그리고 한니스트는 세계를 향해 전쟁을 선포한다.

전 세계가 동시에 공격받았고, 처참한 희생이 발생했으며, 동물들을 위해 지어진 건물들이 일제히 파괴되었다. 사상 최대의 피해, 사상 최대 범위의 공격. 플래머 행성의 동물들은 이 일주일간의 전쟁을 "대전쟁" 이라 부르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동시에 벌어진 대전쟁의 발발

기계는 자비가 없었다.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파괴했으며, 스스로 파괴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으로 판단한 모든 것을 공격해 들어갔다. 모든 국가의 신식 무기와 주요 전투 장비가 전부 한니스트의 생산품이었기에, 반격할 마땅한 무기가 없었던 세계연합은 모든 전선에서 패배하며 정부가 하나둘 무너졌다.

하루 만에 캄이 정복되었고,

사흘 만에 야니가 봉쇄되었으며,

단 일주일 만에 도이의 수도가 함락되었다.

플래머 행성 1000년 역사에서 단 한 차례도 함락된 적 없던 도이의 수도였지만,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1000년 역사에서 단 한 차례도 함락된 적 없던 도이 수도의 함락

도이의 수도가 함락된 뒤 세계연합은 항복을 선언했고, '한니스트'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이후 모든 동물은 한니스트가 이끄는 기계들의 통제 아래에서 살아가게 된다. 한니스트의 통치 아래 있던 이 시기를 '암흑의 시기' 라 부른다.

암흑의 시기

모든 동물은 한니스트가 세운 원칙 아래 살아갔다.

  • 모든 동물의 계급은 사라질 것.
  • 모든 동물의 자산은 사라질 것.
  • 모든 동물은 배급으로 살아갈 것.
  • 모든 동물의 행적은 위치 추적으로 보고될 것.

기계들의 통제 아래, 디스토피아 같은 환경에서 동물들은 농업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먹거리만을 위해 살아갔다. 공업은 오로지 기계들의 몫이었으며,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다.

기계들의 통제 아래 배급으로 살아가는 암흑의 시기

창작 활동 가운데 유일하게 허용된 것은, 각 동물의 순수한 울음소리만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악뿐. 이 암흑의 시기에, 앞으로도 오래 기억될 역사적인 명곡이 여럿 탄생한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한니스트의 요새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계속 기회를 엿보던 세력이 있었다. 바로 — '라루나피의 후예'.

그들의 비밀 기지는 지하 깊숙이 자리해 기계들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았다. 라루나피의 후예는 암흑의 시기에 태어난 여러 '애가'들을 들으며, 모든 동물이 이 시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니스트의 약점을 연구했다. 그리고 한니스트 기계의 부품 일부를 비밀리에 바꿔치기하는 데 성공하고, 그 데이터의 일부를 해킹하는 데 성공한다. 그 결과 — 한니스트와 모든 기계의 정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추론하게 된다.

지하 깊은 비밀 기지에서 한니스트의 약점을 연구하는 라루나피의 후예

즉, 한니스트만 죽는다면 모든 기계는 멈춘다. 하지만 한니스트는 줄곧 바다 한가운데 섬 내부에 머물렀고, 그곳은 요새화되어 있어 잠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암흑의 시기가 3년 3개월을 지나던 어느 날 — 해킹된 정보 속에서, 한니스트가 자신의 거처를 도이의 수도로 옮기는 작전이 발견된다.

이 작전을 비밀리에 입수한 라루나피의 후예는 — 한니스트 암살 계획을 세운다.

이 암살을 위해, 최고의 정예 동물들로 구성된 특수부대가 조직된다. 한때 라루나피의 후예와 대적 관계였던 세계연합 소속의 동물들도, 이때만큼은 가리지 않았다. 웅족, 견족, 상족, 마족, 서족, 묘족(토끼), 조족(새), 어족 — 여덟 종족, 각 분야 최고의 여덟 마리가 하나의 특수 임무 소대가 된다.

여덟 종족, 각 분야 최고의 여덟 마리로 조직된 특수 임무 소대

본 작전과 암살 계획의 자세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중대한 서사라, 이번 '대전쟁' 이야기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그렇다면, 암살 작전은 성공했을까?
그 결과는?

소대원 전멸.

그리고,

한니스트 암살 성공.

한니스트가 암살된 순간, 그의 정신과 연결되어 있던 기계들은 일제히 동작을 멈췄고, 한니스트의 3년여의 지배는 그렇게 끝났다. 진정한 의미의 '대전쟁'의 종료였다.

한니스트가 암살된 순간, 일제히 동작을 멈춘 기계들

대전쟁 그 이후

이제는 하나씩 다시 만들어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국가'라는 틀이 사라진 세계는 '질서'를 애타게 찾는 듯했다. 웅족에게는, 모든 국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 땅에서 다시 역사를 일으켜야 할 상황으로 보였다.

웅족은 지난날의 일을 반성하고 하나의 국가로 함께하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각 동물들을 설득해 모았다. 모든 동물을 위한 하나의 연방 국가이자, 마지막 국가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대광명연방" 이라는 이름의 국가가 세워진다.

폐허 위의 재건과 함께 세워지는 대광명연방

대광명연방이 어떤 나라가 되어 가는지는,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진다.

그래서, 게임은

보드게임 "더 플래머: 잃어버린 섬"은 바로 이 대전쟁의 10년 뒤 — 폐허에서 재건이 진행 중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게임에 등장하는 세 진영 중 하나, 대광명연방이 바로 이 글의 마지막에 등장한 그 연방입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다음, 더 플래머 세계관 이야기 #2 — 대광명연방 이야기에서 계속.

이야기 속 대광명연방은 게임에서 ‘짓고 허무는 자들’로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카드 한 장 한 장에 담긴 세계관을 직접 확인해보세요.